天台宗 大聖院常楽寺 熊本県上益城郡益城町小池3811 「修行」ご案内

이시다산 다이쇼인 죠라쿠지의 역사(덴다이슈)

 

이 절은 니치라카이키라고도 불리며, 아시키타군 구타라기촌(현 야츠시로시)에서 그 유래를 찾아 볼 수있다. 니치라 아버지의 이름은 아리 시토(백제 계)로, 아시키타의 구니노미야코(지역을 다스리는 호적)였다. 니치라공은 백제의 고관(장군)을 지냈으며, 서력583년 7월에 비타츠 천황으로부터 몇번의 초대를 받고 일본으로 귀국한다.
천황으로 부터 일본의 방위에 대한 물음에 평화적 진언을 하여, 이를 반대하는 부하에게 같은 해 12월 30일에 암살된다. 향년 80여세(일본 서기에 기록)
그 후, 니치라공이 천황에게 진언한 대책이 일본의 국시가 되며, 공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 것으로 여겨진다.,
가마쿠라 시대에 슌죠(미후네마치 아마기)가 죠라쿠지에 재적한다. 슌죠는 1199년, 송(중국)나라에 건너가 13년간 수행을 한다. 일본에 귀국후, 교토에 있는 천황의 보살 절인  [센유지]를 재흥한다. (겐코오 샤쿠쇼)
죠라쿠지는 에도 시대에 성주 호소카와공의 쵹간지(기원을 드리는 절)로서, 대대로 국가 안보를 위한 기원이 이루어 졌다. 이 죠라쿠지에는 제 9대 성주인 나리다츠공(향년 30세)의 서체로  [후쿠쥬카이(福聚海)-바다처럼 넓고 큰 행복을 기원]라고 쓰여진 액자가 남아 있다.

전성기 때는 300여명의 스님과 많은 승방이 있었다고 하며, 키타노 보오, 자렌 보오, 흐렌지, 토노오, 테라야시키등의 지명이 있으며, 지금은 없어진 사적의 흔적이 산중에 남아 있다. 죠라쿠지의 돌계단 앞에는 [천공의 집단 부락의 터]가  있으며, 산 기슭을 타고 올라가는 참배 길인 츠치야마구는 구마모토성의 [축성 기와]의 생산 거점이였다. 양질의 흙이 채출 되었으며, 연료는 이이다산의 소나무를 사용하였다. 헤세이 간넨 (1989년)에 후쿠다 스미호씨의 다루마 가마(옛 방식의 가마)를 최후의 가마로 그 역사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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